일본 야구의 대명사와도 같은 고시엔 야구장. 1924년에 건설하여 지금까지 90년 넘게 사용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장입니다. 이 곳은 NPB 한신타이거즈의 홈 구장이고 매년 일본 고교야구 대회 개최지이기도 하죠. 이런 고시엔 야구장에는 3대 명물이 있습니다.

 

마운드의 검은 흙
관중석을 뒤덮는 은색 지붕
야구장 외벽을 감싸는 담쟁이 덩쿨

 

먼저 검은색 토사는 1924년 건설 당시 가까운 강변의 흙을 가져와 깔아둔 것이 시작이라고 합니다. 지붕은 원래 철제 구조물이었으나 1951년에 두랄루민 소재로 바뀌었죠. 소재의 특성상 은색 빛깔을 띄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은 비용으로 외관을 단장하고자 심어둔 담쟁이 덩쿨은 수 십 년이 흘러 풍성하게 자라나 고시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고시엔 야구장에 ‘없는’ 세 가지는 무엇일까요?

 

 

 

 

1. 그라운드 내야에 잔디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야구장 그라운드는 어떤가요. 투수가 올라서는 마운드 주변으로 잔디가 깔려 있습니다. 반면 고시엔 야구장은 내야 섹션이 모두 흙으로 덮혀 있습니다.

 

최근에는 야구장 뿐만 아니라 축구장, 골프장, 학교운동장 등 스포츠 경기를 치르는 곳에는 천연 잔디를 깔아두는 추세입니다. 국제 경기를 치르는 곳이라면 잔디 설치가 의무화로 되어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 시설의 관리 담당자들은 잔디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답니다.

 

운동장에 잔디를 설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잔디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선수의 부상 방지입니다. 잔디가 완충제 역할을 하여 선수들이 거친 플레이를 할 때에 발목과 다리로 전달되는 충격을 줄여주죠. 또한 흙 구장은 표면이 균일하지 않아 볼이 잘 튀어버리지만 잔디 구장에서는 공과 표면의 마찰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선수들이 공을 컨트롤 하기 쉽습니다. 이외에도 토양에 산소를 공급하고, 온도 조절로 그라운드의 열기를 낮추는 등 여러가지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이점이 많은데 고시엔 야구장에서는 왜 잔디를 심지 않는 걸까요?

 

 

100년 전통 계승을 위하여

 

고시엔 구장은 1924년에 지어 올해로 개장 93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시절의 경기장이란 지금처럼 신식의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개장 당시의 모습은 외야까지 모두 검으 흙밭이었습니다. 그라운드 뿐만 아니라 외야 관중석도 그냥 흙을 다져 만든 언덕이었습니다. 초창기 고시엔 구장의 입장 가능 인원은 6만 명이었지만 이처럼 외야 흙밭에 빡빡하게 들어선다면 관중을 최대 8만 명까지 수용 가능하였습니다. 지금은 4만7천 여 명이 들어가니 당시의 어머어마한 장면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장 4년 뒤인 1928년에 고시엔 야구장 외야에 처음으로 천연 잔디를 깔았습니다. 당시에 왜 내야 부분을 제외하였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볼 궤적을 눈에 띄도록 하기 위해서라는데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이 때에 완성된 고시엔의 모습은 일본에서 야구장의 표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후에 건설하는 개방형 야구장은 외야만 잔디로 덮힌 형태를 띄고 있죠. 물론 프로 야구 경기가 열리는 히로시마나 미야기의 경기장은 내야에도 잔디가 깔려 있으나, 아직까지 초중고교 및 동네의 사회인 야구장은 고시엔과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검은 흙을 담아서 귀향하는 전통

 

고시엔에서는 잔디의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내야의 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시엔에서는 프로 야구만큼, 혹은 그 보다 더 큰 이벤트가 있습니다.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전국 고교 야구 대회입니다. 일본 전역의 4천200여 개의 고교 야구부가 목표로 삼는 메이저 대회입니다. 이들은 지역 예선을 거쳐 49개 팀 만이 고시엔의 무대에 설 수가 있죠. 따라서 야구 소년에게 고시엔은 꿈이고 희망입니다.

 

 

<고교 선수들이 눈물흘리며 흙을 담는 장면 (사진=구글링)>

 

 

고시엔 대회는 토너먼트로 진행되는데 경기에서 패배한 팀은 야구장 내야의 검은 흙을 담아가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는 1946년에 열린 제 28회 대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첫 준결승에 진출한 고교 야구부가 상대 팀에게 패하자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각자 자신의 포지션으로 가서 흙을 담아 와라. 내년에 다시 돌려주러 오자.’ 

 

이것이 지금까지 고시엔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어린 선수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흙을 쓸어 담습니다. 승리를 갈망하던 마음이 패배의 아쉬움으로 가득 차는 그 순간에 얼마나 울컥할까요. 앞으로 더욱 긴 미래가 남은 소년들에게 어쩌면 성장의 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고교 소년들의 동경의 무대이자 어른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메타포인 고시엔 야구장. 이런 중요한 장소가 예전의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야구장 소유주인 한신 타이거즈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008년 대대적인 리모델링 진행 시에도 외벽의 담쟁이 덩쿨을 버리지 않고 모종을 보관하였다가 새 외벽에 옮겨 심어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고시엔 대회가 열릴 때면 학생 선수들이 흙을 담아갈 수 있도록 여전히 파울존 한 켠에 토사를 마련 해 두고 있습니다. 그라운드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잔디의 이점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옛 것을 고수하는, 장인 정신을 강조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이 고시엔 야구장에서도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시엔 야구장에는 또 무엇이 없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고시엔 야구장에 두 번째로 ‘없는 것’ 에 관하여 적어보겠습니다.